반도체 로봇 기술, 바이오 자동화 무대로 진출
정부 주도로 첨단바이오 자율실험실 구축 과제가 본격 추진 단계에 들어갔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의 정밀 로봇 기술이 세포 배양 등 바이오 연구 분야로 확대 적용되는 사례다. 산·학·연 6개 기관이 참여해 2028년까지 범용 자동화 플랫폼을 개발할 계획이다.
서울--(뉴스와이어)--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배지를 갈아주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세포 상태를 판단하던 일. 이 과정을 로봇과 인공지능(AI)에 맡기는 ‘첨단바이오 범용 자율실험실(SDL, Self-Driving Lab)’ 구축 과제가 28일 첫 성과교류회를 열고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이날 회의는 한국기계연구원 R1동 비전회의실에서 열렸다. 주관기관인 가톨릭대학교를 비롯해 입셀, 로봇앤드디자인, 한국기계연구원, 셀틱스테크놀로지, 중앙대학교 등 6개 산·학·연 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1차년도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자동화 대상 공정을 논의했다. 총 82억5000만원 규모로 추진되는 이번 과제는 2026년 4월 착수해 2028년 12월까지 진행된다.
협의체 출범 보름여 만에 첫 실무 회의
이번 성과교류회는 지난 8월 11일 서울 엘타워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주최로 열린 ‘자율실험실 산·학·연 협의체’ 출범식 이후, 개별 과제 단위에서 열린 첫 실무 회의다. 출범식에서는 서울대 정유성 교수를 위원장으로 기술·플랫폼·표준, 연구·운영, 실증·확산 등 3개 분과 체계가 공개됐다. 바이오 분야 대표 사례로는 이번 과제가 지향하는 ‘K-CELL’ 범용 자율실험실 플랫폼이 소개됐으며, 발표는 입셀 남유준 부사장이 맡았다. 협의체 논의가 공식 출범한 지 채 3주가 지나지 않아 현장 회의가 이어진 셈이다. 회의를 주최한 임현의 단장은 협의체 연구·운영 분과의 공동 분과장을 맡고 있다. 임 단장은 “자율실험실은 결국 실제 연구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가 관건”이라며 “기관별로 강점이 뚜렷한 만큼, 초기부터 자주 만나 접점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이번 과제에서 장비와 로보틱스, AI를 잇는 통합 운용 체계 설계를 맡는다.
반도체에서 바이오로… 정밀 로보틱스의 무대 전환
이번 과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자동화를 담당하는 로봇앤드디자인의 참여다. 1999년 설립된 이 회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를 중심으로 첨단 로봇과 자동화 장비를 공급해 온 국내 대표 로봇 기업이다. 김진오 회장은 한국로봇산업협회 회장을 지냈고, 2008년 로봇 분야 최고 권위의 엥겔버거상을 수상했다.
반도체 공정에서 축적한 정밀 이송·핸들링 기술을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는 영역으로 옮기는 시도라는 점에서, 로봇 업계에서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사업이다. 김 회장은 “로봇이 쓰일 수 있는 영역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연구 현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장비를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실험실이 아니라,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
과제 총괄을 맡은 가톨릭대학교 주지현 교수는 이번 사업의 초점이 ‘범용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 연구실의 방식을 자동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첨단바이오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특정 실험실에만 통하는 자동화가 아니라, 다른 연구기관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표준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정리한 기준을 국내 특화 SDL 과제들과 공유해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번거롭다는 말로는 부족… 병목을 숫자로 판정한다
실증 허브를 맡은 입셀은 이날 자동화 대상 공정을 어떻게 고를 것인지에 대한 검토 결과를 내놨다. 국제학술지에 출판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배양 프로토콜을 기준으로 공정을 잘게 나눈 뒤, 지금 장비로 바로 구현할 수 있는 구간과 추가 개발이 필요한 구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입셀 남유준 부사장은 자동화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 기준으로 ‘병목판정지수(BPI, Bottleneck Priority Index)’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이 작업이 번거롭다’는 연구자의 경험만으로는 자동화 대상을 정하기 어렵다”며 “사람의 손이 실제로 닿는 시간, 중간 개입 횟수, 반복할 때마다 생기는 편차 같은 항목을 수치로 환산해 비교하면 어느 공정이 병목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판정 기준을 데이터를 모으기 전에 먼저 확정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 기준을 토대로 공정별 담당 기관과 목표 시점을 논의했다.
장비를 잇는 소프트웨어, 버려지던 데이터를 살리는 AI
로봇이 움직이고 데이터가 쌓이려면 이를 하나로 묶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셀틱스테크놀로지는 실험의 설계부터 수행, 분석, 학습까지를 잇는 공통 운영 플랫폼을 맡는다. 장비마다 제각각인 제어 방식을 공통 언어로 추상화해, 장비가 바뀌어도 같은 실험 절차를 그대로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백승빈 대표는 “실험 자동화에서 가장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장비마다 규격이 달라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장비가 추가되거나 교체돼도 같은 구조로 운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번 과제에서 저희가 맡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중앙대학교는 실험실 환경을 비접촉으로 감지하는 센싱 시스템과 이를 해석하는 AI 모델을 담당한다. 온도 분포나 미세한 조작 차이처럼 그동안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지던 정보를 데이터로 남겨,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양다솜 교수는 “같은 프로토콜로 실험해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가 기록되지 않은 환경 변수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 흘려보내던 정보를 데이터로 남기면, 실패한 실험도 학습 자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2차년도 자동화 50%, 3차년도 70%
연구팀은 올해 안에 표준 실험모델 선정과 사람이 직접 수행했을 때의 기준 데이터 확보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데이터가 있어야 이후 자동화로 얼마나 시간과 인력이 줄었는지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제는 2차년도에 연구 자동화 50%와 실험 소요시간 50% 단축을, 3차년도에는 자동화 70% 달성과 함께 기술이전·사업화 성과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성과 교류회를 열어 기관 간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다.
입셀 소개
입셀(YiPSCELL)은 ‘유도만능줄기세포’ 기술을 기반으로 한 국내 최초 스타트업이다. 유도만능줄기세포라는 차세대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해 정상인과 환자에서 유래한 줄기세포주를 생산하고, 동물 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질병 모델링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한다. 줄기세포 기반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진단 및 치료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생명공학 기업이다.
웹사이트: http://yipscell.com/
언론연락처: 입셀 전무상 02-22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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